음악 프로듀서는 컴퓨터 사양을 어디까지 맞춰야 할까
음악 작업용 컴퓨터에서 CPU, 램, SSD,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각각 어디까지 돈을 써야 하는지 정리했습니다.
요약: 음악 작업용 컴퓨터, 어느 사양까지 맞춰야 하나
- 컴퓨터 사양은 음질을 바꾸지 않습니다. 바뀌는 건 한 번에 몇 개를 돌릴 수 있느냐와 얼마나 안 끊기느냐입니다.
- 램은 하는 작업에 따라 답이 갈립니다. 밴드 녹음이나 일렉트로닉은 16GB로 대부분 되고, 오케스트라 음원을 통째로 띄워 놓고 쓰면 64GB로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 끊김과 지연을 만드는 건 CPU보다 오디오 인터페이스 드라이버입니다. 좋은 드라이버는 버퍼를 256으로 두고도, 싼 제품이 128까지 내려야 나오는 반응을 냅니다.
- SSD는 대부분 병목이 아닙니다. 샘플 음원은 앞부분만 램에 올려두고 나머지는 재생하면서 디스크에서 읽어 오기 때문에 SATA로도 충분합니다.
- 사양이 부족한 것 같은 상황은 상당 부분 프리즈와 바운스로 넘어갑니다. 업그레이드는 그걸 해보고 나서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작업 중에 소리가 튀거나 트랙을 더 못 얹게 되면 컴퓨터를 바꾸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견적을 짜기 시작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어디까지가 필요한 사양이고 어디부터가 낭비인지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그 기준을 정리합니다.
먼저, 사양은 음질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게 출발점입니다. 컴퓨터 사양이 관여하는 것은 성능과 호환성이지 출력되는 소리의 질이 아닙니다. 소리의 질은 플러그인의 알고리즘과 컨버터에서 나옵니다. 같은 프로젝트를 램 16GB에서 열든 128GB에서 열든, 바운스된 파일은 같습니다.
사양이 바꾸는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한 번에 몇 개를 돌릴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안 끊기는가입니다. 이 둘만 놓고 견적을 짜면 계산이 훨씬 단순해집니다.
버퍼와 레이턴시는 계산으로 나옵니다
버퍼 사이즈를 얼마로 둬야 하냐는 질문은 감으로 답할 일이 아닙니다. 공식이 있습니다. 버퍼 샘플 수를 샘플레이트로 나누면 지연 시간이 나옵니다.
| 버퍼 | 44.1kHz 기준 지연 |
|---|---|
| 64 샘플 | 약 1.45ms |
| 128 샘플 | 약 2.9ms |
| 256 샘플 | 약 5.8ms |
| 512 샘플 | 약 11.6ms |
샘플레이트를 96kHz로 올리면 같은 버퍼값에서 지연이 절반이 됩니다. 대신 CPU 부하는 늘어납니다.
기준선은 이렇습니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니터링하면서 연주하려면 대체로 7ms 아래가 편합니다. 보컬은 더 민감해서 그보다 낮게 잡습니다. 인터페이스의 다이렉트 모니터링을 쓰면 보통 2ms 아래로 떨어지는데, 이건 컴퓨터를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무에서는 녹음할 때 버퍼를 낮추고 믹싱할 때 올립니다. 녹음 중에는 지연이 문제고, 믹싱 중에는 플러그인 개수가 문제입니다. 한 값으로 계속 버티는 것보다 이렇게 나누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소리가 튀는 원인이 항상 CPU는 아닙니다
CPU 사용률이 40%인데도 팝과 클릭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사양 부족이 아니라 드라이버가 순서를 못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윈도우에서는 DPC 레이턴시라는 값으로 확인합니다. 500마이크로초 아래면 양호하고, 1,000을 넘기면 소리가 튈 수 있습니다.
원인은 대체로 오디오와 상관없는 곳에 있습니다. 네트워크 카드 드라이버 하나 때문에 값이 2,000마이크로초까지 치솟은 사례가 보고됩니다. 화면 색온도를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처럼 사용자 모르게 계속 돌고 있는 프로그램이 범인인 경우도 흔합니다. 몇 초에 한 번씩 화면을 확인하는 동작이 오디오 처리 순서를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컴퓨터를 바꾸기 전에 백그라운드에서 돌고 있는 프로그램부터 정리해 보는 게 순서입니다. 전원 옵션을 고성능으로 두고, 절전 기능을 끄고, 안 쓰는 프로그램을 내리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램은 하는 작업에 따라 답이 다릅니다
여기가 가장 많이 과소비되는 지점입니다. 램은 필요한 만큼 있으면 되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 16GB — 밴드 녹음, 팝·록·포크 믹싱, 일렉트로닉 작업 대부분이 여기서 끝납니다. 국내 커뮤니티에서도 16GB를 다 쓰기도 힘들다는 이야기가 흔히 나옵니다.
- 32GB — 가상악기를 많이 쓰거나 편곡이 두꺼워지면 여유가 생깁니다. 필수라기보다 편해지는 구간입니다.
- 64GB 이상 — 오케스트라 음원을 통째로 띄워 놓고 작업하는 경우입니다. 이쪽은 64GB로도 부족하다는 사람이 실제로 있습니다. 샘플을 최소한만 불러오도록 맞춰 놓아도 모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램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원인을 따져보면 음악이 아닌 경우가 꽤 있습니다. 영상 편집을 같이 돌린다거나, 브라우저 탭을 수십 개 띄워둔 상태라거나 하는 식입니다. 램을 늘리기 전에 무엇이 실제로 램을 먹고 있는지 한 번 보는 게 좋습니다.
CPU는 코어 수보다 한 코어의 속도가 먼저입니다
오디오 처리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한 트랙에 플러그인 열 개를 한 줄로 이어 걸면, 앞의 것이 끝나야 뒤의 것이 계산됩니다. 이 줄은 여러 코어로 쪼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채널이 어디까지 버티는지는 코어 수가 아니라 코어 하나의 속도가 정합니다.
코어 수는 다른 데서 일합니다. 트랙이 많아질 때 그 트랙들을 여러 코어에 나눠 담습니다. 그러니 트랙이 적고 채널마다 플러그인을 잔뜩 거는 스타일이면 클럭이, 트랙이 많고 채널마다 가볍게 쓰는 스타일이면 코어 수가 더 효과적입니다.
현실적인 선은 이렇습니다. 4코어 이상이면 작업은 됩니다. 8코어에 클럭이 충분히 높으면 대부분의 홈스튜디오 작업에서 병목이 CPU가 아닌 지점까지 갑니다. 국내 커뮤니티에서도 몇 세대 전 6코어급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옵니다.
벤치마크를 볼 때는 일반 벤치마크 말고 오디오 전용 지표를 보는 게 정확합니다. DAWbench는 40트랙 세션에 플러그인을 하나씩 늘려가며 소리가 깨지는 지점을 찾는 방식으로 측정합니다. 버퍼 사이즈별로 따로 재기 때문에, 낮은 버퍼에서 어느 CPU가 유리한지까지 나옵니다. 게임 벤치마크 점수와는 순위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돈이면 인터페이스 드라이버에서 가장 크게 바뀝니다
이 부분이 견적에서 가장 자주 빠집니다. 같은 컴퓨터에 인터페이스만 바꿔도 낮은 버퍼에서의 안정성이 달라집니다.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라 드라이버 완성도 때문입니다.
잘 만든 드라이버는 버퍼 256에서 낼 수 있는 반응을, 싼 제품은 128까지 내려야 겨우 냅니다. 같은 반응을 절반의 부하로 얻는 셈입니다. 입력부터 출력까지 오가는 지연 수치는 좋은데 드라이버 버그가 잦아 결국 다른 제품으로 갈아탔다는 이야기가 이 바닥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대체로 미화 500달러, 원화로 70만 원 안팎을 밑도는 인터페이스는 레이턴시 성능이 그저 그렇습니다. CPU를 한 등급 올리는 데 쓸 돈이 있다면, 그 돈을 드라이버 평판이 좋은 인터페이스로 돌리는 편이 체감이 큽니다.
SSD는 대개 병목이 아닙니다
NVMe가 SATA보다 훨씬 빠른 건 맞습니다. 다만 그 차이가 음악 작업에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샘플 음원은 통째로 읽어들이지 않습니다. 소리의 앞부분만 램에 미리 올려두고, 나머지는 재생하면서 디스크에서 읽어 옵니다. 그래서 필요한 건 최고 속도가 아니라 여러 곳을 동시에 끊김 없이 읽어 주는 능력입니다. SATA SSD 정도면 이 조건을 채웁니다.
실제 병목은 다른 데 있습니다. 드라이브를 USB 허브에 물려 두고 다른 장치들과 대역폭을 나눠 쓰는 경우, 드라이브 자체 속도와 무관하게 문제가 생깁니다. 연결 방식을 먼저 보는 게 순서입니다.
용량은 다릅니다. 시스템용 따로, 샘플 라이브러리용 따로 두는 구성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라이브러리는 생각보다 빨리 찹니다.
맥과 윈도우, 지금 시점의 실제 차이
성능만 놓고 보면 최근 세대끼리는 크게 벌어지지 않습니다. 결정은 다른 데서 납니다.
맥 쪽 이점은 오디오 드라이버 계층이 OS에 통합돼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페이스마다 드라이버 상태가 제각각인 상황을 덜 겪습니다. 애플 실리콘은 전력 대비 성능도 좋아서, 팬 소리 없이 조용한 환경을 만들기 쉽습니다. 로직을 쓴다면 선택지가 없기도 합니다.
윈도우 쪽 이점은 확장성과 가격입니다. 부품을 갈아 끼우고, 케이스를 키워 조용하게 만들고, 나중에 램만 추가하는 식의 대응이 가능합니다. 같은 예산에서 더 높은 사양이 나옵니다.
맥으로 넘어갈 때 확인할 게 하나 있습니다. 로제타 2 종료 일정입니다. 애플 실리콘용으로 다시 나오지 않은 플러그인은 로제타라는 호환 기능을 거쳐 돌아가는데, 이 기능이 앞으로 나올 macOS에서 단계적으로 사라집니다. 단종된 옛 버전 플러그인은 애플 실리콘용이 영영 나오지 않습니다. 오래 쓴 플러그인이 많다면 새 맥을 사기 전에 그 목록부터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업그레이드 전에 해볼 것들
사양이 부족하다는 느낌의 상당 부분은 워크플로우로 해결됩니다.
프리즈는 트랙을 임시 오디오 파일로 만들어 두고 플러그인 연산을 멈추는 기능입니다. 되돌릴 수 있지만 그 DAW 안에서만 유효합니다. 바운스는 되돌릴 수 없는 대신 다른 DAW로 옮길 수 있습니다. 미디 트랙 몇 개만 프리즈해도 가상악기가 먹던 부하가 통째로 사라집니다.
이 외에 효과가 확인된 것들입니다.
- 가벼운 플러그인으로 대체합니다. DAW 번들 플러그인이 서드파티보다 가벼운 경우가 많습니다. 스케치 단계에서는 무거운 것을 굳이 걸 이유가 없습니다.
- 세션 샘플레이트를 낮춥니다. 96kHz로 작업하고 있다면 44.1이나 48로 내리는 것만으로 부하가 크게 줄어듭니다.
- 버퍼를 단계별로 씁니다. 녹음할 때만 낮추고 그 외에는 올려 둡니다.
- 컴퓨터를 하나 더 붙입니다. 오래된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가상악기 부하를 넘기는 방식이 있습니다. 8년 된 저사양 기기도 이 용도로는 쓸 만합니다.
이만큼 해보고도 막히면 그때가 진짜 업그레이드 시점입니다.
예산대별로 어디에 돈을 쓸지
같은 예산이라도 배분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집니다.
입문 — 지금 쓰는 컴퓨터를 그대로 두고 인터페이스와 모니터링에 씁니다. 사무용으로 산 노트북에서도 곡은 나옵니다. 여기서 컴퓨터에 돈을 쓰면 체감할 게 거의 없습니다.
중급 — 8코어급 CPU에 32GB 램, SATA 또는 보급형 NVMe SSD로 충분합니다. 남는 예산은 드라이버 평판이 좋은 인터페이스로 보냅니다. 국내 기준으로 컴퓨터 본체가 백만 원대 중후반이면 이 구성이 나옵니다.
프로 — 여기서만 램 64GB 이상과 상위 CPU가 의미를 갖습니다. 오케스트라 음원을 통째로 띄워 두거나, 마감이 촘촘해서 렌더 시간이 곧 비용인 경우입니다. 이 조건이 아니라면 상위 구성은 대부분 놀게 됩니다.
사양보다 먼저인 것
마지막이 실은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써도 형편없는 모니터로 들으면 돈을 버린 것이라는 말이 이 바닥에 있습니다. 판단을 내리는 도구는 컴퓨터가 아니라 귀와 그 귀에 들어오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스피커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방이 절반을 결정합니다. 스피커나 컴퓨터에 돈을 쓰기 전에 원룸 작업실은 스피커보다 방부터 정리하세요를 먼저 보시는 편이 순서가 맞습니다. 배치와 흡음은 대체로 부품값보다 싸고, 효과는 더 확실합니다.
컴퓨터는 곡을 담는 그릇이지 곡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지금 사양에서 곡이 안 끝나고 있다면, 문제가 정말 사양인지부터 확인해 보는 게 좋습니다.
NOIZ 소개
NOIZ는 한국에 기반을 둔 독립 음악 프로듀싱 팀입니다.
R&B와 재즈를 기반으로 EDM, 팝 등 다양한 현대 음악 장르를 결합해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을 만듭니다.